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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례 9>이 상 설 (李相卨ㆍ1870~1917)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열린 만국평화회의(1907)에 파견됐던 고종의 밀사 이상설(李相卨ㆍ1870~1917, 사진 중앙)은 간도에서 서전서숙(瑞甸書塾)이란 학교를 세워 조선 민족의 교육을 일으킨 인물이다. 독립운동가로만 널리 알려진 이상설은 1900년에 ‘산술신서(算術新書)’라는 수학 책을 썼는데, 이것은 당시 일본에서 인기 있던 우에노 기요시(上野淸ㆍ1854~1924)의 ‘근세산술(近世算術)’을 번역하여 편집한 책이다. 당시에 발간된 송상도(宋相燾ㆍ1871~1946)의 ‘기로수필(騎驢隨筆)’에는 이상설이 이 책으로 당대 최고의 수학자라는 평가를 얻었다고 기록돼 있다. 여하튼 이상설은 이 책을 서전서숙에서 교재로 사용하기도 했다. ‘기로수필’에 따르면 이상설은 신동이란 소리를 들으며 자랐는데 특히 수학 분야를 깊게 공부했으며, 영어 프랑스어 심지어 러시아어까지 해독했고, 법률에도 일가견을 보였다고 한다. 물론 스승 없이 독학으로 이룬 성과였다. 1894년에는 문과(대과)에도 급제했으니, 그야말로 동서 학문에 통달한 당대의 인재였음이 분명하다. 한국 과학사에서 그는 근대수학의 시작을 의미하는 진정한 ‘선구자’라고 할 수 있다. 실제로 대한제국시기의 성균관은 1895년 칙령 제 136호와 학부령 제2호에 의하여 문묘를 받드는 성균관과 교육기관인 경학원으로 분리된다. 이상설은 1895년부터 1896년까지 성균관장을 역임하며 국립최고교육기관인 성균관에 근대식 교육 내용 특히 근대수학을 접목 시키는 노력을 기울였다는 사실은 한국수학사 연구에서 큰 의미를 갖는다.

1895년(고종 32)에 시작된 새로운 수학교육은 유럽식 수학을 바탕으로 했기 때문에 산학은 찾아볼 수가 없었고 주로 산술의 계산·응용에 관련된 내용이었다. 이렇게 필산과 주산에 중점을 둔 교육이 시작되자 성균관의 교육과정도 개편되어 산술을 이수하도록 했다. 성균관은 1895년 7월 2일자 칙령 제 136호로 성균관에 3년제 경학과를 설치하고 강독, 작문, 역사학, 지리학, 수학(가감승제, 비례, 차분) 을 필수과목으로 지정하였다. 동시에 교수임명제, 입학시험제, 졸업시험제를 실시하고 학기제, 연간의 수업일수, 주당 강의시간수를 책정하는 등, 제도상 근대적인 개혁을 단행하였다. 그리하여 성균관은 고전대학으로부터 근대대학으로 일대 전환을 보게 되었다. 이는 조선후기 최대 수학자인 남병길, 남병철, 박규수 등 성균관 대사성 출신들의 신학문에 대한 연구 및 저술 활동의 일환이었으며 이상설과 같은 교육을 중심으로 이뤄진 독립운동의 방향을 제시할 수 있는 힘이었다. 1905년 러일전쟁이 일본에 유리하게 전개되자 을미조약이 일제에 의하여 강제로 체결되어 우리는 주권을 상실하게 되고 이에 따라 민족저항운동이 다양하게 전개되었다. 그러나 이런 노력이 커지면 커질수록 일제는 우리 스스로의 교육에 대한 노력을 통제하며 민족혼을 담은 교육의 뿌리를 제거하려는 노력을 지속적으로 취한다. 결국 이 마지막이 국립성균관을 무력화 시킨 후 일제가 1922년 관립경성제국대학 설립하는 것으로 마무리 되었다고 볼 수 있다. 신교육의 필요성에 따라 1905년 3월 1일자 관보를 통해 성균관제를 개편하여 관장과 교수 외에 박사(강사) 3명을 임명한다. 1908년 10월 29일 칙령 제 76호로 성균관 관제가 새로 제정되고 11월 20일에 학칙을 제정하여 근대적 고등교육기관으로의 재편을 지향한다. 여기서 특기할 사항은 ‘경학 기타 학과(역사, 지리, 수학)’ 로 분과를 분명히 한다. 이에 따라 늘어난 전공을 담당하기 위하여 <조선총독부 1910년 학사통계를 참고하면> 교원이 3명 추가된다. 그리고 교과과정에 산술, 대수, 기하 에 보태 물리, 화학과 같은 자연과학 강좌가 추가된다. 그리고 입학 자격이 20세 이상 30세 이하로 제한된다. 이는 교육위 효율성을 고려한 근대적 성격의 조치로 1895년 고종에 의하여 반포된 교육조서에서 밝힌 ‘실용적 학문에 힘쓰고 덕 지 체를 함양’의 의미가 비로소 전통적 관립 교육기관에서 구체화 된 것이다. <이상구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