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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례 8>세종대왕 ‘세계 과학 통치자’

[경향신문 2004-10-10 17:32:51]
<조양희 기자>yanghee@unn.net 2002/9/30 10:18AM

세종대왕시대의 과학은 이슬람 과학과 서유럽 근대과학 사이의 역사적 공백을 메워주는 동아시아 과학의 업적으로 재조명되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돼 관심을 모으고 있다.
전상운 박사(전 성신여대 총장, 동아시아과학사)는 ‘15세기 과학사의 중심에 서 있었던 세종 임금’이라는 논문을 통해 “세종시대 과학기술이 15세기에 이루어진 다른 모든 나라의 성과를 능가한다”면서 “세종시대의 과학이 세계 학계에서 제대로 평가받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그 증거로 1983년 일본에서 편찬한 ‘과학사기술사사전’에 따르면 1400~1450년의 주요 업적으로 한국(Korea) 29건, 중국(China) 5건, 일본(Japan) 0건, 동아시아 이외의 전 지역 28건이 기록되어 있다고 제시했다.
전박사는 이 같은 내용을 지난 9일 서울의대 함춘회관에서 한국과학사학회(회장 황상익 서울대 교수)가 주최하는 ‘이달의 과학기술인물-세종대왕’ 세미나에서 발표했다.
“1446년 훈민정음(한글)을 창제, 반포해 한민족의 문화유산 가운데 가장 훌륭한 백미를 남긴 세종대왕은 한글을 만든 언어학자이기도 하지만 스스로 과학기술을 공부하고 자연과학, 산업기술을 발전시킨 조선시대 대표적인 과학자입니다.”
전박사는 세종대왕이 ‘스스로 과학적 아이디어를 가진 통치자’였다는 점을 높이 평가했다. 세종은 조선왕조의 천문역법을 세우는, 야심찬 국가적 프로젝트에 대한 아이디어를 짜내고 이를 정인지에게 제안했다. 세종은 한양의 북극 고도를 표준으로 별자리를 관측하고 자주적으로 역법을 개발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경복궁에 ‘대간의’라는 천문대를 건설하고 여러 가지 관측기기를 제작해 ‘칠정산(七政算)’ 내·외편을 편찬했다. 전박사는 “왕조시대에 달력은 황제가 내리던 것이었는데 세종의 자주적인 역법 계산은 중국 황제의 권위를 거스르는 일이었다”고 설명했다. 아마도 편찬한 책에 ‘역법’의 이름을 붙이지 않고 ‘7행성 운동에 대한 천문학적 계산’(칠정산)이라는 학문적인 표제를 붙여 중국의 시비를 피하려 한 것으로 추측된다.
전박사는 또 세종시대에 오늘날 생명과학이라 불리는 학문이 발전했다고 밝혔다. 농업기술 지침서인 ‘농사직설’(세종12년, 1430년)을 보면 유기농법에 의한 집약적 경작기술을 제안했으며 이를 농가에 효과적으로 보급했다.
또 조선의 대표적인 의학서인 ‘향약집성방’(세종 15년, 1433년)과 ‘의방유취’(세종 27년, 1445년)를 편찬했다. 이는 농업기술의 독자적인 전개와 함께 생명과학으로서의 의약학 분야에서도 커다란 성과를 이루어낸 것이다. 그외 기상학·지리학 등 자연과학과 인쇄기술, 무명과 분청사기의 대량생산기술 등 산업기술도 발달했다. 전박사는 세종시대 과학기술의 발전 원동력을 ▲과학성과 실용성 존중 ▲자주적인 기술개발 노력 ▲인재양성 ▲조직적인 공동연구 등을 들고 있다.
세종은 또 국책과제로 과학기술정책을 집행했으며 국가적인 차원에서 기술혁신을 장려했다. 세종은 정인지의 지도로 그 당시 대표적인 수학자서인 ‘산학계몽’을 학습했을 정도로 학문에 열정을 보였다. 실제로 집현전의 학자들에게 주어진 연구과제는 그들의 희망과 관계없이 국가의 정책에 의해 주어지는 것이었다.
또 인쇄기술을 발전시키기 위해 주자소의 장인들이 처자의 생계를 걱정하지 않도록 특별 보수를 제공하고 술과 고기를 하사하는 등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철제 화포를 만들기 위해 두 왕자에게 대포의 일을 맡아 감독케 하고 화포 주조의 총책임자 지위를 높여주기도 했다. 이렇게 꽃피운 세종시대의 과학은 오늘날 동아시아 과학기술사·의학사가들의 중요한 연구과제로 자리매김되고 있다.
〈이은정기자 ejung@kyunghyang.com〉